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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 전설 장훈(하리모토 이사오) 프로필 학력 나이 고향 주요 이력 커리어 재일교포 일존 국적으로 귀화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5.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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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훈 프로필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자, 재일교포 사회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뛰어난 야구 실력으로 일본 프로야구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동시에 한·일 관계와 재일교포의 정체성 문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장훈이 일본으로 귀화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의 발언과 배경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개인 정보
• 본명: 장훈(張勲)
• 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勲)
• 출생: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
• 국적: 일본 (한국 → 일본 귀화)
• 직업: 전 프로야구 선수, 스포츠 해설가
• 포지션: 외야수, 지명타자

2. 장훈의 야구 경력


일본 프로야구 통산 기록
• 안타: 3,085개 (일본 프로야구 역대 1위)
• 홈런: 504개
• 타점: 1,676점
• 타율: 0.319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통산 3,000안타 기록은 일본 프로야구 사상 유일하며, 이는 전 세계 야구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대기록입니다.

소속 팀
1. 도에이 플라이어스 (1959~1972): 그의 초기 커리어가 시작된 팀.
2. 요미우리 자이언츠 (1973~1975):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에서 활약하며 그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3. 롯데 오리온스 (1976~1981): 선수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한 팀.

수상 경력
• 일본 프로야구 MVP (1962)
• 베스트 나인 선정 16회
•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1990)

3. 한국과의 관계


한국 국적 유지와 민족적 자부심

장훈은 과거 여러 차례 일본으로의 귀화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한국 국적을 유지해왔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평생 일본어를 배우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었고, 장훈 역시 이를 존중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 2018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조국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 국적은 종이 한 장으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며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했습니다.
• 한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1980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2007년)**을 수훈하며 재일교포 야구인으로서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4. 일본 귀화: 배경과 논란

귀화 시기 및 발표

장훈은 2023년 12월, 일본의 보수 매체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일본으로 귀화했음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그는 “한국의 한 정권이 재일교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귀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귀화 배경
1. 한국 정부와 재일교포 문제
• 장훈은 한 정권이 재일교포를 “자발적으로 일본에 간 사람들”로 치부하며 “다른 나라에서 잘 살고 있다”고 표현한 점에 대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 그는 “재일교포들은 원해서 일본에 온 것이 아니다. 대부분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제징용,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온 것”이라며 역사적 맥락을 강조했습니다.
2. 한국 야구계에 대한 서운함
• 장훈은 “20년간 KBO 총재 특별보좌역으로 활동하며 한국 프로야구 리그 창설에 기여했지만, 한국시리즈나 올스타전 같은 행사에 단 한 번도 초청받지 못했다”고 토로했습니다.
• 그는 이를 두고 “한국은 은혜와 의리를 잊어버리는 나라”라고 비판했습니다.
3. 실리적 판단
• 장훈은 귀화에 대해 “국적은 종이 한 장으로 바뀌는 것이며, 언제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며 실리적인 선택임을 암시했습니다.

5. 일본에서의 논란성 발언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긍정적 평가

장훈은 인터뷰에서 “일제 식민지배로 인해 한국이 전기, 철도 등 생활 인프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언급하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일제 식민지배 긍정론’과 일맥상통하는 발언으로, 한국 내에서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이 발언은 산케이신문이라는 극우 매체를 통해 발표되었기에 더욱 큰 논란을 불렀습니다.
• 한국의 역사학계는 이를 왜곡된 역사 인식이라고 비판하며, “일제의 식민지배는 인프라 발전이 아닌 한국 사회의 착취와 억압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6. 재일교포와 한·일 관계에서의 역할

재일교포 사회의 상징

장훈은 재일교포 2세로서 일본 사회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한때 한국과 일본의 다리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그는 재일교포 사회의 권익 향상과 정체성 유지에 기여했지만, 귀화 이후 그의 발언은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평가
• 일본: 장훈의 귀화는 일본 내에서 환영받고 있으며, 그를 일본 야구 역사와 문화의 일부로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 한국: 귀화와 그의 발언은 한국 내에서 큰 실망과 비판을 초래하며, 그가 과거 강조했던 ‘민족적 자부심’과의 모순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7. 결론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로 남아 있지만, 그의 귀화와 최근 발언은 한·일 관계와 재일교포 정체성 문제에서 논쟁적인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선택은 실리적인 판단과 개인적 실망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감정적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장훈의 사례는 재일교포의 복잡한 역사적 경험과 한·일 관계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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