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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e

곽자의의 일생과 안록산 사사명의 난, 당나라 멸망까지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4. 3. 18.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는 당나라 시대의 장군 곽자의(郭子儀)의 생일잔치를 그린 그림으로, 그가 누린 부귀영화와 후손들의 번영을 상징하는 작푸니다. 이 그림은 조선 시대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혼인과 같은 중요한 행사 때 사용되었으며, 복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¹².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곽분양행락도는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세부적인 장면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곽자의 생애 및 업적

곽자의


곽자의(郭子儀)는 697년부터 781년까지 살았던 중국 당나라의 중기 명장으로, 분양왕(汾陽王)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현종(玄宗)부터 숙종(肅宗), 대종(代宗), 덕종(德宗)에 이르는 4대의 황제를 섬겼으며, 안사의 난에서 큰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여러 번의 외침을 막아내며 나라를 지켰습니다¹. 그의 공로로 당나라는 그가 살아있을 때 150년 더 지속될 수 있었다고 평가받습니다.

곽자의


곽자의는 당나라의 부병제가 무너지기 이전까지 지방직으로서 고관에 속했으며, 그의 아버지 경지(敬之)는 당에서 상주로 분류되었던 여러 주의 자사를 역임했습니다. 곽자의 자신은 무거(武擧)에서 우수를 인정받아 관직을 받았으며, 중년 이후에는 단우대도호(単于副都護), 진원군사(振遠軍使)가 되었습니다¹.


그의 주요 활동 중 하나인 안사의 난에서는 삭방군의 이광필(李光弼)과 연계하여 병사를 나누어 하북으로 진격, 상산에서 군사를 합쳐 사사명(史思明)의 군을 패배시키고 하북을 수복했습니다. 또한, 위구르군과 함께 하곡을 평정하고, 하동과 풍상을 차례대로 수복하는 등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안사의 난


안사의 난은 755년부터 763년까지 중국 당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란입니다. 이 난은 절도사 안록산이 시작했으며, 나중에 그의 부하인 사사명과 그의 자녀들이 이어받았습니다. '안사의 난'이라는 이름은 안록산과 사사명의 이름에서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안록산은 연(燕)이라는 나라를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했습니다. 이 반란은 당나라의 인구를 크게 감소시키고, 당나라의 지방통제력 약화 및 중앙아시아 주도권 상실로 이어졌으며, 결국 당나라의 쇠퇴와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안록산 생애


안록산(安祿山, 703년 ~ 757년 1월 30일)은 당나라의 무장으로, 안사의 난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는 이란계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안이라는 성은 소그디아나의 부카라(현재의 우즈베키스탄)를 가리키는 중국식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안록산은 여러 언어에 능통했으며, 당나라의 평로절도사, 범양절도사, 하동절도사 등을 역임하면서 군사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755년에 반란을 일으켜 연(燕)이라는 나라를 선포하고 황제를 자처했으나, 결국 아들 경서의 손에 살해되었습니다¹. 안록산의 난은 당나라의 쇠퇴와 멸망의 원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안록산의 난, 또는 안사의 난은 755년부터 763년까지 중국 당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란입니다. 이 난은 당나라의 절도사 안록산이 시작했으며, 그의 부하인 사사명과 그의 자녀들이 이어받았습니다. 안록산은 반란을 일으켜 연(燕)이라는 나라를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했습니다. 이 반란은 당나라의 인구를 크게 감소시키고, 당나라의 지방통제력 약화 및 중앙아시아 주도권 상실로 이어졌으며, 결국 당나라의 쇠퇴와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사명 생애


사사명(史思明, 생년 미상 ~ 761년)은 당나라의 무장으로, 755년부터 763년까지 중국을 뒤흔든 안사의 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안록산이 이끄는 반란이 실패한 후, 사사명은 난을 이어받아 지도했습니다. 그는 안록산의 부장으로 활약했으며, 안록산이 그의 아들에 의해 암살된 후에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난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아들 사조의에 의해 암살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당나라 멸망 원인


당나라의 멸망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습니다. 주요 원인으로는

- 안사의 난 : 755년부터 763년까지 이어진 대규모 반란으로, 당나라의 중앙집권체계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 난은 당나라의 인구 감소, 지방통제력 약화, 중앙아시아 주도권 상실 등을 초래했습니다¹.
- 절도사의 성장 : 9세기에 절도사로 알려진 지역 군 통치자들의 성장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들은 점차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여 중앙 정부의 권위를 무너뜨렸습니다¹.
- 황소의 난 : 875년부터 884년까지 일어난 반란으로, 당나라의 수도 장안과 낙양이 약탈당하며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벌들이 성장하여 중앙 정부의 권력을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 정치적 불안정 : 환관의 권력 남용, 황제의 약한 리더십, 외척과 귀족 간의 갈등 등이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했습니다.
- 경제적 문제 : 전쟁과 반란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불안정한 경제 정책이 당나라의 재정을 악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내외적 요인들이 겹치면서 당나라는 점차 쇠퇴하였고, 최종적으로 907년 주전충이 당 애제를 축출하고 후량을 건국함으로써 당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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