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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e

중국 남송의 충신 문천상, 그리고 정기가

by 지식과 지혜의 나무 2024. 3. 8.

문천상은 남송의 마지막 충신으로, 그의 생애와 업적은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다음은 문천상에 대한 자세한 프로필입니다.

 

목 차

 

문천상 프로필

문천상

 

이름: 문천상 (文天祥)
자: 이선 (履善)
호: 문산 (文山)
출생: 1236년 6월 6일, 길주 (현재의 강서성 길안시)
사망: 1283년 1월 9일, 원나라 대도 (현재의 북경시 동성구)
본명: 운손 (雲孫)
변경 후 이름: 천상 (天祥)
변경 후 자:송서 (宋瑞), 후에 '이선'으로 다시 변경

생애 및 경력


- 문천상은 1255년에 진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였습니다.
- 1259년, 몽고군의 침입에 맞서 수도 이전을 반대하며 면직되었습니다.
- 1275년, 의용군을 조직하여 원나라에 대항했습니다.
- 1276년, 원나라와 강화를 맺기 위해 바얀의 진중으로 갔으나, 바얀이 그의 기량을 두려워하여 갇혀 버렸습니다.
- 남송이 멸망한 후에도 도종의 장자 익왕을 받들고 잔병을 모아 싸웠으나, 1278년 오파령 전투에서 패배하여 체포되었습니다.
- 원나라에서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이를 거부하며 충성을 지켰습니다.
- 대도로 이송되어 약 3년간 갇혀 있는 동안 '정기가'를 지었습니다.
- 결국 1283년, 충신은 두 주군을 섬기지 않는다는 요지의 말만 되풀이하고 사형당했습니다.

 

문천상은 중국 남송 시대의 충신으로, 그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 의의는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다음은 문천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입니다:

생애: 문천상(文天祥)은 1236년 6월 6일 남송의 길주(현재의 강서성 길안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255년에 진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남송이 몽고군의 침입을 받을 때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등의 활동으로 면직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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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적: 1275년에는 의용군을 조직하여 원나라에 대항했으며, 남송이 멸망한 후에도 도종의 장자 익왕을 받들고 잔병을 모아 싸웠습니다. 그러나 1278년 오파령 전투에서 패배하여 체포되었고, 이후 원나라는 그의 위대한 재능과 충심에 매료되어 다양한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이를 거부하며 충성을 지켰습니다.

 

문천상 업적

 

 1276년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임조청정하던 태황태후 사씨로부터 우승상(右丞相) 겸 추밀사(樞密使), 도독제로군마(都督諸路軍馬)로 임명받았습니다. 이때 문천상이 빋은 관직을 요약하면 재상인 우승상, 군정을 주관하는 추밀사, 송나라의 지방단위인 각 로(路)의 군대와 군마를 도독하는 도독제로군마로 임명받은 것으로 엄연히 명분상 송의 모든 권력을 합법적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대가 남송 수도 임안으로 진격하자 문천상은 장세걸과 함께 계속 전투를 벌일 계획을 제안했으나, 이 계획은 진의중에 의해 거부되었고, 당시 송나라 조정의 많은 관리들은 다가오는 원나라 군대를 두려워하여 도망치거나, 화평파였습니다. 결국 장세걸과 같은 전쟁을 지지하는 인물들은 저항 싸움을 계속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1276년 송의 태황태후 사씨는 원나라의 장군이자 총사령관인 바린 바얀에게 문천상을 보내 평화를 교섭하도록 했으나 문천상은 항복할 생각이 없었기에 바얀을 만났을 때 그에게 몽골군의 의도를 묻고 원나라 군대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북조(원나라)가 송나라를 나라로 여긴다면, 군사를 다시 불러들여 조공을 하도록 교섭하겠소. 북조 군대가 무사히 자국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최선의 해결책이 될 것이소. 그러나 우리 종묘를 멸망시킬 작정이라면 점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오. 당신의 군대는 재앙을 당할 수도 있으며, 당신의 승리는 확실하지 않소."

문천상이 항복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을 본 바얀은 그 자리에서 문천상을 체포하여 억류했습니다. 문천상은 분노했으나 태황태후와 다른 송나라 조정 관리들이 항복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문천상은 포기하지 않고 북으로 끌려가던 중 몽골군 진영에서 탈출하여 복주에서 장세걸, 육수부, 진의중과 함께 도종의 맏아들 단종을 받들고 저항을 계속하지만 1278년 오파령 전투에서 패해 장홍범에게 붙잡혀 그 길로 대도(북경)에 압송되었습니다. 

 

쿠빌라이는 그 재능을 아깝게 여겨 마음을 돌려 보도록 계속 설득했는데, 이때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망국을 향한 자신의 충절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정기가는 삼국지 촉나라 제갈량의 출사표에 비견될 정도의 명문으로, 중국 역사에 길이 남을 명시입니다. 원나라 신료들도 문천상에게 호의적인 여론이었으나, 당시 남송 잔당들의 반란이 연이어 일어났고 반란군은 "문승상을 구출하기 위해" 대도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했기에 이렇게 문천상이 살아있어 남송의 잔병들이 소요를 그치지 않는 것이 밝혀지자 어쩔 수 없이 처형하기로 중론을 모았습니다. 이윽고 투옥 5년여만인 1283년 남쪽을 바라보고 연경(燕京)의 시시(柴市)에서 참형되니 이 때 문천상 향년 47세였습니다. 처형 후에도 쿠빌라이는 이 결정을 후회하면서, '그야말로 진정한 사내 대장부였다' 라며 애석해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처형당할 때 형리를 둘러보며 "내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다."라고 말했는데, 이 문구는 吾事畢矣(오사필의)라 하여 사자성어로 남아있습니다.

 

 

정기가

天地有正氣
천지유정기 (하늘과 땅에 올바른 기운이 있어)
雜然賦流形
잡연부유형 (엇섞여 유동적인 형체에 부여되니)
下則爲河嶽
하즉위하악 (땅에서는 강과 산이 되고)
上則爲日星
상즉위일성 (하늘에서는 해와 별이 되었네)
於人曰浩然
어인왈호연 (사람들이 호연지기라고 부르는 것이)
沛乎塞蒼冥
패호색창명 (아주 많아지면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우노라)
皇路當淸夷
황로당청이 (왕도가 맑고 안정되어 있을 때는)
含和吐明廷
함화토명정 (조화로움을 머금고 밝은 조정에 펼쳐지나)
時窮節乃見
시궁절내견 (시절이 곤궁할 때는 절개를 보여)
一一垂丹靑
일일수단청 (하나하나 역사에 드리웠도다)
在齊太史簡
재제태사간 (제에 있어서는 태사의 죽간)[10]
在晋董狐筆
재진동호필 (진에 있어서는 동호[11]의 붓)
在秦張良椎
재진장량추 (진에 있어서는 장량의 철퇴)
在漢蘇武節
재한소무절 (한에 있어서는 소무의 부절[12]이 있었네)
爲嚴將軍頭
위엄장군두 (장군 엄안의 머리가 되고)
爲嵇侍中血
위혜시중혈 (시중 혜소의 피[13]가 되기도 했으며)
爲張睢陽齒
위장수양치 (수양성을 지키던 장순[14]의 이빨이 되고)
爲顔常山舌
위안상산설 (상산 태수 안고경의 혀[15]가 되기도 하였네)
或爲遼東帽
혹위요동모 (어떤 때는 요동 땅의 관녕의 모자[16]가 되어)
淸操厲氷雪
청조여빙설 (맑은 지조는 얼음이나 눈보다 매서웠다네)
或爲出師表
혹위출사표 (또 어떤 때는 제갈량의 출사표가 되어)
鬼神泣壯烈
귀신읍장렬 (귀신도 장렬함에 울어대었고)
或爲渡江楫
혹위도강즙 (어떤 때는 강 건너 삿대가 되니)[17]
慷慨呑胡羯
강개탄호갈 (의기가 북받친 서러움이 오랑캐를 삼킬만했고)
或爲擊賊笏
혹위격적홀 (혹은 역적을 치는 홀이 되어)
逆竪頭破裂
역수두파열 (역적의 머리를 깨뜨렸다네)[18]
是氣所磅礡
시기소방박 (이 바른 기운 세상에 가득하여)
凜烈萬古存
늠렬만고존 (늠름하고 장렬함이 만고에 전해진다)
當其貫日月
당기관일월 (그 올바른 기운 해와 달을 꿰뚫으니)
生死安足論
생사안족론 (삶과 죽음을 어찌 논할 것인가?)
地維賴以立
지유뢰이립 (땅을 묶는 밧줄은 이에 의지해 우뚝 서고)
天柱賴以尊
천주뢰이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은 이에 힘입어 높아진다)
三綱實係命
삼강실계명 (삼강이 실로 이로써 맥을 유지하고)
道義爲之根
도의위지근 (도의가 이를 뿌리를 삼았도다)
嗟予遘陽九
차여구양구 (슬프구나, 내가 어지러운 때 만나)
隸也實不力
예야실불력 (매인 듯 힘쓰지 못한 것이리오?)
楚囚纓其冠
초수영기관 (남쪽의 갇힌 사람 갓에 끈 매고)
傳車送窮北
전거송궁북 (수레에 실려 북쪽 끝에 이르러 보니)
鼎鑊甘如飴
정확감여이 (끓는 솥 달기 엿보다 더하건만)
求之不可得
구지불가득 (찾아도 얻을 길이 없구나)
陰房闃鬼火
음방격귀화 (어두운 방에 귀신불만 깜벅거리는데)
春院閟天黑
춘원비천흑 (봄 동산 하늘은 어둠에 잠기었구나)
牛驥同一皂
우기동일조 (소와 기린이 한 마굿간에 서고)
鷄栖鳳凰食
계서봉황식 (닭은 봉황에 깃들여 같이 먹다가)
一朝蒙霧露
일조몽무로 (하루 아침 안개 이슬 맞고 보면)
分作溝中瘠
분작구중척 (도랑 속의 뼈다귀 신세 돼버리니)
如此再暑寒
여차재서한 (이렇게 두 번 더웠다 추운 동안)
百沴自闢易
백려자벽역 (온갖 요사한 기운 스스로 물러갔구나)
嗟哉沮洳場
차재저여장 (아아, 슬프구나, 이 진탕 속이)
爲我安樂國
위아안락국 (나의 즐거운 나라가 되었네)
豈有他繆巧
기유타무교 (어찌 별다른 잔재주 있어)
陰陽不能賊
음양불능적 (음양이 도둑질 못한 것일까)
顧此耿耿在
고차경경재 (돌아보아 이 속에 깜박이는 불빛)
仰視浮雲白
앙시부운백 (우러러 저기 떠도는 흰 구름)
悠悠我心悲
유유아심비 (한없는 내 마음 속 슬픔)
蒼天曷有極
창천갈유극 (푸른 하늘인들 다하랴만은)
哲人日已遠
철인일이원 (어진 이들 가신 날은 이미 멀어도)
典刑在宿昔
전형재숙석 (그 본 때는 아직 엊그제로다)
風檐展書讀
풍첨전서독 (처마 밑에서 책 펴 읽고 나니)
古道照顔色
고도조안색 (옛 길이 내 낯을 비추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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