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오구라 백인일수(小倉百人一首) 100수 전곡(全曲)과 그에 대한 간략 해설을 정리한 것입니다.
• 원문은 가마쿠라 시대 고어(古語)와 한자를 포함한 옛 표기로 된 일본어(와카) 원문입니다.
• 이어서 현대 일본어(어휘 풀이)와 한국어 번역을 제시하고, 마지막에 핵심적인 감상·배경을 간단히 덧붙였습니다.
• 각 시의 장단과 해석은 연구자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니, 아래 내용은 ‘예시적 번역 및 해설’로 봐 주세요.
1~25번
1. 덴지 천황(天智天皇)
원문
秋の田の かりほの庵(いほ)の 苫(とま)をあらみ
わが衣手は 露にぬれつつ
1. 현대어 풀이
• 가을 논밭을 둘러싼 초라한 오두막의 얇은 지붕이 헐거워
• 내 옷자락은 이슬에 흠뻑 젖어만 가네
2. 한국어 번역
가을 논밭, 거칠어진 짚으로 엮은 오두막
헐거운 지붕새 틈으로 이슬 스미어
내 소매는 축축이 젖어드네
3. 감상 / 배경
• 덴지 천황(626~672)은 고토쿠 천황 치세 이후 나니와(難波)에서 정치 개혁을 이끌었던 인물로, 백인일수의 첫 번째 시인이다.
• 이 시는 가을밤 궁핍한 초가에서 지내는 소박한 풍경과, 황제가 자연 속에서 직접 농사(백성)를 보살핀다는 상징이 담겨 있다.
2. 지토 천황(持統天皇)
원문
春すぎて 夏来(き)にけらし 白妙(しろたへ)の
衣ほすてふ 天(あま)の香具山(かぐやま)
1. 현대어 풀이
• 봄이 지나 어느새 여름이 되었나 보구나
• 새하얀 옷을 말린다는 소문이 들리는 아마노카구산이로다
2. 한국어 번역
봄은 지나고 어느덧 여름이 왔구나
하얀 옷 널어 말린다는 가구산 언덕길
3. 감상 / 배경
• 덴지 천황의 황후이자 뒤를 이은 지토 천황(645~703).
• 하얀 옷을 말린다 함은, 신성한 산인 ‘아마노카구산’에 여름의 계절감이 깃들었다는 의미.
• 일본 전통에서 ‘하얀 옷’(白妙)은 신성함과 청결을 상징한다.
3.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柿本人麻呂)
원문
あしびきの 山鳥(やまどり)の尾の しだり尾の
ながながし夜を ひとりかも寝む
1. 현대어 풀이
• 발길 험한 산속의 꿩은 길게 늘어진 꼬리 깃을 가졌건만
• 그처럼 질긴 이 밤을 홀로 지새울 뿐이네
2. 한국어 번역
산새(산꿩)의 긴 꼬리처럼
구불구불 길어지는 이 밤
외로이 나 홀로 잠드노라
3. 감상 / 배경
• 만요슈(万葉集)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히토마로.
• 산새의 늘어진 꼬리에 자기의 ‘긴 밤’을 비유해, 길고 외로운 밤을 표현했다.
4. 야마베노 아카히토(山部赤人)
원문
田子(たご)の浦に うち出でてみれば 白妙の
富士の高嶺に 雪は降りつつ
1. 현대어 풀이
• 다고(田子)의 해안가로 나아가 바라보니
• 새하얀 후지산 높은 봉우리에 눈이 내리는구나
2. 한국어 번역
다고 해안에 나가 바라보니
눈부시게 흰 후지 봉우리
눈 덮여 곱게 내려앉네
3. 감상 / 배경
• 자연 시인으로 이름난 아카히토. 후지산을 찬탄하는 대표적인 노래.
• 하얀 설산의 장엄미와 고결함을 노래함으로써, 일본의 최고 상징인 후지를 기렸다.
5. 사루마루노 다이후(猿丸太夫)
원문
奥山に 紅葉踏みわけ 鳴く鹿の
声きくときぞ 秋はかなしき
1. 현대어 풀이
• 깊은 산속 단풍잎을 밟으며 짝 찾아 우는 사슴 울음소리 들릴 때
• 가을이 더욱 서글퍼지는구나
2. 한국어 번역
단풍 든 깊은 숲,
짝 찾아 울부짖는 사슴 울음소리
가슴 시리게 가을은 서글프다
3. 감상 / 배경
• 사루마루노 다이후는 실존 여부가 논란이 많지만, 헤이안 초기의 신비로운 가인(歌人)으로 전한다.
• 한적한 가을산에 울려 퍼지는 사슴 울음이 쓸쓸함을 극대화한다.
6. 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
원문
かささぎの 渡せる橋に おく霜の
白きを見れば 夜ぞふけにける
1. 현대어 풀이
• 까치가 놓아주었다는 은하의 다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것을 보니
• 밤이 깊어 버렸구나
2. 한국어 번역
까치가 놓은 다리라 불리는 은하수에
하얀 서리 내려앉음을 보니
밤은 더욱 깊어만 가는구나
3. 감상 / 배경
• 오토모노 야카모치는 만요슈 편찬에 크게 기여한 가인.
• ‘까치의 다리’는 칠석 전설(견우직녀)에서 유래한 것이라, 가을 밤의 쓸쓸함을 은유한다.
7. 아베노 나카마로(阿倍仲麻呂)
원문
天の原 ふりさけ見れば 春日なる
三笠の山に いでし月かも
1. 현대어 풀이
• 하늘을 우러러보니 가슴이 뭉클하구나
• 저 달은 고향 가스가(春日)의 미카사산에서 보았던 그 달인가?
2. 한국어 번역
드넓은 하늘 우러러 바라보니
고향 미카사산에서 뜨던 달이
오늘 밤도 내 머리 위에 떠 있는가
3. 감상 / 배경
• 나카마로는 당나라에 유학 가 평생을 살았던 인물.
• 타지에서 바라본 달에 고향 그리움이 더해진 시로, 일본인들이 특히 사랑한다.
8. 기센 법사(喜撰法師)
원문
わが庵は 都のたつみ しかぞ住む
世をうぢ山と 人はいふなり
1. 현대어 풀이
• 내 초라한 암자는 수도(都) 동남쪽 끝에 있기에
• 이 고을을 ‘우지산(憂し山)’이라 부른다더라
2. 한국어 번역
내 암자, 도성의 동남 끝에 있어
사람들은 시름 많은 산골이라 부르는데
그리 한적하게 살아가는 삶이로다
3. 감상 / 배경
• 기센은 6가선(六歌仙)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승려 시인.
• ‘우지(宇治)’와 ‘우지(憂し, 시름·근심)’를 겹쳐 쓰는 언어유희(가케코토바)가 특징이다.
9. 오노노 코마치(小野小町)
원문
花の色は 移りにけりな いたづらに
わが身世にふる ながめせしまに
1. 현대어 풀이
• 꽃빛마저 빛이 바래 버렸구나
• 봄비(또는 시름)에 젖어 날 보내는 동안에…
2. 한국어 번역
저 꽃빛도 어느새 빛바래 가고
비에 젖은 내 마음도 헛되이
시름에 젖어 봄을 흘려보냈구나
3. 감상 / 배경
• 헤이안 시대 전설적인 미인·시인.
• ‘花の色(꽃빛)’이 여인의 미모나 전성기를 상징. 세월의 덧없음, 이별, 시름을 담았다.
10. 세미마루(蝉丸)
원문
これやこの 行くも帰るも 別れては
知るもしらぬも 逢坂の関
1. 현대어 풀이
• 참으로 이곳이로구나. 오고 가는 길손들이 헤어졌다가
• 아는 이, 모르는 이 마저도 만나는 아오사카의 관문이여
2. 한국어 번역
여기가 바로 오가며 스치는 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도
다 함께 만나는 아오사카의 관문이여
3. 감상 / 배경
• 세미마루는 문헌마다 맹인 음악가로 전해지며, 실존이 불확실하다.
• ‘逢坂(おうさか)’는 ‘만남의 고개’라는 중의적 표현을 통해 인연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11. 오노노 다카무라(参議篁)
원문
わたの原 八十島かけて 漕ぎ出でぬと
人には告げよ あまの釣船
1. 현대어 풀이
• 끝없이 펼쳐진 바다, 수많은 섬들을 향해 배를 저어 나아간다 하여라
• 어부의 낚싯배여, 사람들에게 전해다오
2. 한국어 번역
아득한 바다 건너
무수히 펼쳐진 섬을 향해
출항한다고 전해다오, 어부의 낚싯배여
3. 감상 / 배경
• 오노노 다카무라는 당(唐)에 파견되어 활약한 관인·학자.
• 이 시는 먼 항해(혹은 유배)를 떠나는 심정을 의연하게 표현했다.
12. 승정 헨조(僧正遍昭)
원문
天つ風 雲の通ひ路 吹きとぢよ
をとめの姿 しばしとどめむ
1. 현대어 풀이
• 하늘바람이여, 구름이 지나가는 길을 불어 막아주오
• 선녀(무희)의 자태를 조금 더 머물게 하고 싶구나
2. 한국어 번역
불어라, 하늘바람이여
저 구름길 막아서서
춤추는 선녀 자태를 잠시나 붙잡고 싶다
3. 감상 / 배경
• 헨조(遍昭)는 승려 신분이지만 ‘6가선’ 중 하나.
• 선녀나 무희의 춤에서 느껴지는 황홀한 순간을 묘사했다.
13. 요제이 천황(陽成院)
원문
筑波嶺の 峰より落つる みなの川
恋ぞ積もりて 淵となりぬる
1. 현대어 풀이
• 쓰쿠바 산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 내 사랑도 쌓이고 쌓여 깊은 소용돌이가 되었구나
2. 한국어 번역
쓰쿠바산 봉우리서 흘러내린 물
차곡차곡 모여 깊은 소(沼)를 이루듯
쌓이고 쌓인 내 사랑, 빠져나올 길 없네
3. 감상 / 배경
• 요제이 천황(868~949)은 어린 나이에 천황이 되었다 퇴위.
• 떨어지는 폭포수가 사랑의 깊은 소용돌이에 비유되었다.
14. 미나모토노 토오루(河原左大臣)
원문
陸奥(みちのく)の しのぶもぢずり 誰ゆえに
乱れそめにし 我ならなくに
1. 현대어 풀이
• 미치노쿠 지방에서 생산되는 ‘시노부 모지즈리(억새 염직무늬)’처럼
• 어찌하여 내 마음은 어지럽게 물들어버렸나, 내 탓도 아닌데
2. 한국어 번역
북녘 땅 미치노쿠의 무늬처럼
뒤엉켜버린 내 사랑의 마음
내 탓도 아니건만, 왜 이리 소란한지
3. 감상 / 배경
• 토오루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시대의 명문 귀족.
• ‘시노부모지즈리’는 복잡한 문양의 염색 천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상징한다.
15. 고코 천황(光孝天皇)
원문
君がため 春の野に出でて 若菜摘む
わが衣手に 雪は降りつつ
1. 현대어 풀이
• 그대 위해 봄 들판에 나가 새싹 뜯으니
• 내 옷자락 위로 눈이 내리고 있네
2. 한국어 번역
그대 위하여 봄날의 들에 나가
여린 새싹을 꺾어 내오는데
눈은 하얗게 내 소매에 내려앉았네
3. 감상 / 배경
• 고코 천황(830~887)은 흔치 않은 “평민 출신 천황”으로도 불렸다.
• 봄인데도 눈이 내리는 이질적 풍경과 ‘사랑하는 임을 위한 마음’이 어우러진 서정.
16. 아리와라노 유키히라(中納言行平)
원문
立ち別れ いなばの山の 峰に生ふる
まつとしきかば 今かへり来む
1. 현대어 풀이
• 이별하며 떠나가지만, 이나바 산 봉우리에 자라는 소나무가 나를 기다린다 하면
• 언제라도 곧 돌아오리다
2. 한국어 번역
헤어져 떠나지만
그대가 소나무처럼 날 기다린다면
나는 꼭 되돌아오겠소
3. 감상 / 배경
• 아리와라노 나리히라의 형으로, 형제 모두 뛰어난 가인이었다.
• ‘소나무(まつ)’와 ‘기다림(まつ)’의 동음이의어로,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한다.
17. 아리와라노 나리히라(在原業平朝臣)
원문
ちはやぶる 神代もきかず 龍田川
からくれなゐに 水くくるとは
1. 현대어 풀이
• 신화의 시대에도 듣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로다
• 다쓰타가와가 붉게 물든 단풍잎으로 강물이 맺혀 흐르다니
2. 한국어 번역
신들의 시대에도 없던 기이한 일
다쓰타 내(川) 물빛이 붉게 물들어
아찔한 단풍빛 수면을 이루다니
3. 감상 / 배경
•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는 전설적 미남, 풍류객.
• 강물 위에 붉은 단풍이 꾹꾹 뭉쳐 내려앉아, 마치 ‘피처럼 붉은’ 장관을 연출한다.
18. 후지와라노 도시유키(藤原敏行朝臣)
원문
住の江の 岸に寄る波 よるさへや
夢の通ひ路 人目よくらむ
1. 현대어 풀이
• 스미노에 기슭에 밀려오는 물결은 밤마다 오는데
• 왜 그대는 꿈길에서조차 내게 오길 꺼리는가
2. 한국어 번역
스미노에 해변 파도는
밤마다 밀려오건만
그대는 꿈길조차 왜 찾아주지 않나요
3. 감상 / 배경
• 헤이안 초의 대표 가인.
• 밤마다 생각나는 님이지만, 정작 상대는 꿈에도 나타나 주지 않아 애타는 사랑 노래.
19. 이세(伊勢)
원문
難波潟 みじかき蘆の ふしの間も
あはでこの世を すぐしてよとや
1. 현대어 풀이
• 나니와 개펄의 짧은 갈대 마디만큼의 짧은 순간도
• 함께 못한 채 이 생을 보내란 말인가
2. 한국어 번역
나니와 개펄의 갈대마디처럼
짧게나마 님과 만나지 못한 채
이 생을 허무히 살라 하신단 말인가
3. 감상 / 배경
• 이세는 황족·귀족 여성들에게 존경받은 궁정 가인.
• ‘갈대 마디’로 상징되는 짧은 순간조차 함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
20. 모토요시 친왕(元良親王)
원문
わびぬれば 今はたおなじ 難波なる
みをつくしても あはむとぞ思ふ
1. 현대어 풀이
•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나니와(難波)의 수로표(みをつくし)가 되어
• 내 온몸 바쳐 당신과 만나고 싶네
2. 한국어 번역
괴로워하다 결국 결심하네
차라리 수로표처럼 내 몸 다 바쳐
그대와 꼭 만나리라
3. 감상 / 배경
• 나니와(오늘날 오사카) 어귀에 세워 둔 ‘수로표(みをつくし)’와 ‘내 몸을 다한다(身を尽くし)’의 중의적 표현.
• 이루기 힘든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겠다는 비장한 각오.
21. 소세이 법사(素性法師)
원문
今来むと いひしばかりに 長月の
有明の月を 待ち出でつるかな
1. 현대어 풀이
• “곧 가겠다”라는 그 말 한마디에
• 구월(長月)의 새벽 달이 질 때까지 밤새워 기다리고 말았네
2. 한국어 번역
금방 오겠노라 말했던 그대 한마디
구월 밤새 걷힌 달 바라보며
내내 기다려 새벽을 맞이하네
3. 감상 / 배경
• 소세이는 6가선 중 한 명이자 승려 시인.
• 조금 늦어질 뿐이라 여겼는데, 새벽달마저 사라질 때까지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안타까움.
22. 훈야노 야스히데(文屋康秀)
원문
吹くからに 秋の草木の しをるれば
むべ山風を 嵐といふらむ
1. 현대어 풀이
• 바람이 불자마자 가을 들꽃과 나뭇가지가 시들어버리는걸 보니
• 과연 산바람을 ‘폭풍(嵐)’이라 부르는 것도 당연하구나
2. 한국어 번역
바람 한 번 불어오니
순식간에 시들어가는 가을꽃
이래서 산바람을 폭풍이라 불러도 탈 없으리
3. 감상 / 배경
• 훈야노 야스히데 또한 6가선.
• 가을바람이 지닌 무상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노래한다.
23. 오에노 치사토(大江千里)
원문
月見れば 千々に物こそ 悲しけれ
わが身一つの 秋にはあらねど
1. 현대어 풀이
• 달을 보노라니 온갖 근심과 애수가 떠오르네
• 이 가을이 내 혼자만의 것은 아닐 텐데도 말이야
2. 한국어 번역
달을 보자마자
수없이 솟는 그리움과 슬픔
이 가을, 내 것만은 아닐 텐데
3. 감상 / 배경
• ‘달’을 보며 느끼는 보편적 슬픔을 표현.
• 가을 달 아래 인간의 고독과 상념이 겹쳐, 한층 서글프다.
24.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家)
원문
このたびは ぬさも取りあへず 手向山
紅葉のにしき 神のまにまに
1. 현대어 풀이
• 이번 여행길에는 제물을 마련하지 못했으나
• 다무케산의 아름다운 단풍비단을 대신 바치오니, 신께서 받아 주시길
2. 한국어 번역
이번만은 변변한 예물도 못 준비했으나
다무케산의 찬란한 단풍비단 바치오니
부디 신이시여, 기쁘게 받아 주소서
3. 감상 / 배경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는 학자·정치가로 유명.
• 붉게 물든 단풍을 신에게 바치는 시적 제의(祭儀)의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25. 후지와라노 사다카타(三条右大臣)
원문
名にし負はば 逢坂山の さねかづら
人にしられで 来るよしもがな
1. 현대어 풀이
• 만남(逢)을 상징하는 아오사카산의 ‘사네카즈라 덩굴’ 이름을 지녔으니
• 아무도 모르게 그대와 만날 수 있는 길을 알려다오
2. 한국어 번역
이름부터 ‘만남’이라 불리는
아오사카 산의 덩굴이여
은밀히 님과 오갈 길 알려다오
3. 감상 / 배경
• ‘逢坂(あふさか)’ 자체가 ‘만남’을 뜻하는 언어유희.
• 은밀한 밀회, 사랑의 기원을 나타낸다.
여기까지가 1~25번입니다.
(답변이 너무 길어지므로, 이어지는 26~100번은 아래 [2부]에 계속 정리합니다.)
[2부] 26~50번
26. 후지와라노 다다히라(貞信公)
원문
小倉山 峰のもみぢ葉 心あらば
今ひとたびの みゆき待たなむ
1. 현대어 풀이
• 오구라 산의 단풍이여, 마음이 있다면
• 임금(천황)의 다음 행차까지 잠시 지지 말고 있어 다오
2. 한국어 번역
오구라산 단풍아
네게도 마음 있다면
다시 오실 그날까지 물들지 말고 기다려주렴
3. 해설
• 후지와라노 다다히라(880~949)는 측근 정치의 중심인물이자, 한문학에도 능했다.
• 천황을 환영하기 위한 대자연의 ‘봉헌’ 역할로 단풍을 의인화한다.
27. 후지와라노 가네스케(中納言兼輔)
원문
みかの原 わきて流るる いづみ川
いつ見きとてか 恋しかるらむ
1. 현대어 풀이
• 미카노 평원을 흘러 나오는 이즈미강처럼
• 언제 그대를 보았길래 이렇게 그리워지는가
2. 한국어 번역
미카노 들을 흘러나오는 이즈미강
한 번 본 듯 아닌 듯 아련한 님
어째서 이토록 그립기만 한지
3. 해설
• 지명 ‘いづみ川’(이즈미가와)와 ‘언제 보았(いつ見)’를 연결하는 가케코토바.
• 한 번 스친 인연이 어느새 가슴 한켠을 크게 차지한다는 ‘설레는 그리움’.
28. 미나모토노 무네유키(源宗行朝臣)
원문
山里は 冬ぞさびしさ まさりける
人めも草も かれぬと思へば
1. 현대어 풀이
• 산속 마을의 겨울은 외로움이 더욱 깊구나
• 사람도, 풀도 모두 시들어 버렸으니
2. 한국어 번역
산골 마을의 겨울은
더욱 고독이 짙어지네
인적도 풀 한 포기도 말라버렸기에
3. 해설
• 헤이안 시대 귀족이자 문인.
• 한적한 산중 생활과 겨울 풍경의 극도의 적막함을 그렸다.
29. 오시코치노 미쓰네(凡河内躬恒)
원문
心あてに 折らばや折らむ 初霜の
おきまどはせる 白菊の花
1. 현대어 풀이
• 처음 내린 서리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국화꽃을
• 눈대중으로 막 꺾어버리면, 서리인지 꽃인지 헷갈리겠구나
2. 한국어 번역
서리 내린 가을 아침
허옇게 빛나는 저 꽃송이
국화인지, 그냥 서리인지 더 헷갈리네
3. 해설
• 오시코치노 미쓰네는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에 많은 작품이 실린 중견 시인.
• 국화와 첫서리를 교묘하게 겹쳐, 하얀색 이미지로 가을 새벽의 섬세함을 표현.
30. 미부노 다다미네(壬生忠岑)
원문
有明の つれなく見えし 別れより
暁ばかり うきものはなし
1. 현대어 풀이
• 새벽달이 차가운 빛으로 보이던 그날 이별 이후
• 새벽 시간만큼 괴로운 때가 없구나
2. 한국어 번역
새벽달 빛은 어찌 저리 싸늘했던가
그날의 이별 이후로
새벽마다 외로움 깊어지네
3. 해설
• 미부노 다다미네는 가정사(家集)도 남긴 궁정 시인.
• 사랑과 이별의 슬픔이 ‘찬 새벽 달빛’과 겹쳐, 서늘함을 배가시킨다.
31. 사카노우에노 고레노리(坂上是則)
원문
朝ぼらけ 有明の月と 見るまでに
吉野の里に 降れる白雪
1. 현대어 풀이
• 동틀 무렵, 희미하게 보이는 달빛인가 했더니
• 요시노의 마을엔 하얀 눈이 내렸구나
2. 한국어 번역
막 밝아오는 새벽
저건가 새벽달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요시노 고을에 내려앉은 함박눈이었네
3. 해설
• 요시노(吉野)는 벚꽃과 설경으로 유명한 명승지.
• ‘새벽달’과 ‘하얀 눈’이 교차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했다.
32. 하루미치노 쓰라키(春道列樹)
원문
山川に 風のかけたる しがらみは
流れもあへぬ 紅葉なりけり
1. 현대어 풀이
• 산속 시냇가에 바람이 만들어 놓은 ‘임시 둑’은
• 흘러내리지 못하고 쌓인 단풍잎이었네
2. 한국어 번역
산계곡 흐르는 물길에
바람결에 걸쳐진 붉은둑
알고 보니 발걸음 묶인 단풍잎이었구나
3. 해설
• 하루미치노 쓰라키는 생몰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가인.
• 붉은 단풍잎이 작은 물길을 막고 있는 정경을 아름답게 시화(詩化).
33. 기노 도모노리(紀友則)
원문
ひさかたの 光のどけき 春の日に
しづ心なく 花の散るらむ
1. 현대어 풀이
• 구름 한 점 없이 평온한 봄 햇살 속에서도
• 꽃들은 어찌 그리 다급히 지고만 있을까
2. 한국어 번역
맑고 잔잔한 봄볕이 가득해도
그저 분주히 흩날려 지는 꽃들
어쩌면 그리 마음 급히 지는가
3. 해설
• ‘6가선’ 중 하나인 기노 도모노리.
• 화창한 봄날에 펼쳐지는 꽃비의 허무함을 포착했다.
34. 후지와라노 오키카제(藤原興風)
원문
誰をかも 知る人にせむ 高砂の
松も昔の 友ならなくに
1. 현대어 풀이
• 누구를 벗이라 삼아야 하나?
• 저 오래된 소나무조차 이제는 옛 벗이 아니니
2. 한국어 번역
누구를 벗삼아 살아야 하나
저 높은 곳의 백 년 송(松)마저
옛 시절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3. 해설
• 헤이안 초 귀족 시인.
• 변해버린 시간 속에서 느끼는 고독, 예전 벗마저도 변한 시대감이 주제.
35. 기노 쓰라유키(紀貫之)
원문
人はいさ 心も知らず ふるさとは
花ぞ昔の 香ににほひける
1. 현대어 풀이
• 사람의 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 고향에 핀 꽃은 옛날 그대로의 향기를 풍기는구나
2. 한국어 번역
사람 속마음은 갈피 없으나
고향에 핀 매화꽃 향기는
예전과 변함없는 정겨움이로다
3. 해설
• 기노 쓰라유키(868~945)는 《고킨와카슈》 편찬 주도자이자 대표적 가인.
• 사람은 변하나 자연(고향 꽃)은 변치 않는다고 노래, 정감과 그리움을 강조.
36. 기요하라노 후카야부(清原深養父)
원문
夏の夜は まだ宵ながら 明けぬるを
雲のいづこに 月やどるらむ
1. 현대어 풀이
• 여름밤은 아직 초저녁인데 어느새 밝아져 버렸네
• 달은 어느 구름 뒤에 머무르고 있을까
2. 한국어 번역
한창 밤이 깊어지려던 여름밤
벌써 아침이 찾아왔나
달은 구름 뒤 어디쯤 숨어 있을까
3. 해설
• 후카야부의 생애 기록은 미비.
• 여름밤의 짧음을 ‘달 찾을 틈도 없이 새벽’으로 그려, 시간의 속절없음을 표현.
37. 훈야노 아사야스(文屋朝康)
원문
白露に 風の吹きしく 秋の野は
つらぬきとめぬ 玉ぞ散りける
1. 현대어 풀이
• 이슬 맺힌 가을 들판 위로 바람이 불자
• 마치 꿰지 못한 구슬이 뿔뿔이 흩어지듯 반짝인다
2. 한국어 번역
맑은 이슬 맺힌 가을 들에
바람 한 점 일렁이니
꿰지 않은 구슬알이 수놓이듯 반짝이며 흩어지는구나
3. 해설
• ‘구슬’(玉)로 비유한 이슬, 가을 풍경의 섬세한 감각을 담았다.
• 바람에 부서지는 이슬방울 imagery가 매우 시각적이다.
38. 우콘(右近)
원문
忘らるる 身をば思はず 誓ひてし
人の命の 惜しくもあるかな
1. 현대어 풀이
• 내가 잊혀지는 건 괜찮지만
• 맹세를 어긴 그 사람의 목숨이 아깝구나(죄를 짓게 되니)
2. 한국어 번역
잊혀져도 괜찮은 내 운명
하지만 맹세 깨뜨린 당신이
받게 될 벌이 두렵고 안타까울 뿐
3. 해설
• 우콘은 궁중 시녀로, 정확한 신원 미상.
• 이별·배신당한 슬픔보다는, 상대가 신에게 거짓 맹세를 했다는 점을 걱정한다는 역설적 표현.
39. 미나모토노 히토시(参議等)
원문
浅茅生の 小野の篠原 しのぶれど
あまりてなどか 人の恋しき
1. 현대어 풀이
• 키 낮은 억새 풀밭, 시노하라(篠原)의 자잘한 대나무 숲에 마음 감춰 보려 해도
• 어찌 이다지도 그립고 애달픈지
2. 한국어 번역
억새 풀밭 시노하라에
내 마음 숨겨보려 하건만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이 그립구나
3. 해설
• 미나모토노 히토시는 궁정 신료.
• 지명 ‘篠原(しのはら)’와 동사 ‘しのぶ’(참다, 숨기다)로 언어유희.
•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읊은 비연(悲戀).
40. 다이라노 가네모리(平兼盛)
원문
忍ぶれど 色に出でにけり わが恋は
物や思ふと 人の問ふまで
1. 현대어 풀이
• 애써 숨기려 했는데 결국 얼굴빛에 드러나 버렸구나, 내 사랑은
• “무슨 걱정 있느냐?”라며 남들이 물을 정도로
2. 한국어 번역
숨기려 했던 내 사랑의 마음
어느덧 얼굴에 비쳐나
걱정 있냐고 남들이 물어보는구나
3. 해설
• 가네모리는 10세기 귀족이자 시인.
• 사랑을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심리, ‘색에 드러난다’는 표현이 특징적이다.
41. 미부노 다다미(壬生忠見)
원문
恋すてふ わが名はまだき 立ちにけり
人しれずこそ 思ひそめしか
1. 현대어 풀이
•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나 보구나
• 남모르게 시작한 마음이었는데
2. 한국어 번역
내 사랑 소문이 벌써 퍼져버렸나
아무도 모르게 품었던 건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내 이름과 함께 떠돌까
3. 해설
• 미부노 다다미는 40번 시인(다이라노 가네모리)와 애정시로 경쟁했던 일화가 전한다.
• ‘사랑에 빠졌다’는 풍문이 빠르게 퍼지는 궁중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42. 기요하라노 모토스케(清原元輔)
원문
契りきな かたみに袖を しぼりつつ
末の松山 波こさじとは
1. 현대어 풀이
• 서로 눈물로 소매를 적시며 맹세했었지
• 스에노마쓰야마 산에는 파도가 결코 넘지 못하듯, 우리 사랑은 변치 말자고
2. 한국어 번역
눈물에 젖은 두 소매, 함께 쥐고
스에의 마쓰산에 파도 넘지 못하듯
끝까지 변치 않겠노라 약속했건만
3. 해설
• ‘末の松山(스에노마쓰야마)를 파도가 못 넘는다’는 옛 전승에서 인용된 불변의 상징.
• 이 시는 후대 문학에서도 사랑의 맹세를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됨.
43. 후지와라노 아쓰타다(権中納言敦忠)
원문
逢ひ見ての 後の心に くらぶれば
昔はものを 思はざりけり
1. 현대어 풀이
• 실제 만나본 뒤에 느끼는 이 깊은 그리움에 비하면
• 예전엔 별다른 고민도 아니었구나
2. 한국어 번역
직접 만난 후에야 깨달은
이 맹렬한 그리움에 견주자니
옛날 내 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네
3. 해설
• 아쓰타다는 사랑 노래에 뛰어난 궁정 시인.
• ‘실제로 사랑을 나눈 후의 애달픔’이 더한층 크다는 역설.
44. 후지와라노 아사타다(中納言朝忠)
원문
逢ふことの 絶えてしなくば なかなかに
人をも身をも 恨みざらまし
1. 현대어 풀이
•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 그 사람도, 나 자신도 이렇게 원망하지 않았을 텐데
2. 한국어 번역
아예 만나지나 말 걸 그랬나
이토록 원망할 일도 없었으리
나도 그대도 서로 상처주지 않았을 텐데
3. 해설
• ‘차라리 만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까?’라는 회한의 심정.
• 덧없는 사랑 뒤에 남는 상처를 그린 시.
45. 후지와라노 고레타다(謙徳公)
원문
あはれとも いふべき人は 思ほえで
身のいたづらに なりぬべきかな
1. 현대어 풀이
• ‘가엾다’고 위로해 줄 사람조차 떠오르지 않는구나
• 이러다 헛되이 내가 망가져 버릴 것만 같네
2. 한국어 번역
나를 가엾게 여겨줄 이도 없고
지쳐버린 내 삶마저 헛되니
결국 이렇게 스러져 버릴까 두렵구나
3. 해설
• 고레타다는 후지와라 일족의 공경(公卿).
• 사회적 고립감과 사랑의 결핍, ‘완전히 버려진’ 심정을 노래.
46. 소네노 요시타다(曽禰好忠)
원문
由良のとを 渡る舟人 かぢを絶え
行方もしらぬ 恋の道かな
1. 현대어 풀이
• 유라 해협을 지나가는 뱃사람이 노를 잃어버렸구나
• 행선지도 모르는 것처럼, 나의 사랑길도 막막하네
2. 한국어 번역
유라 해협 건너려던 뱃사공
노가 끊겨 떠내려가듯
내 사랑 역시 갈피 없이 흘러만 가는구나
3. 해설
• 소네노 요시타다는 방랑적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 사랑이란 ‘나침반 잃은 뱃사공’처럼 어찌할 바 모르는 심정을 직유했다.
47. 에교 법사(恵慶法師)
원문
八重葎(やえむぐら) しげれる宿の さびしきに
人こそ見えね 秋は来にけり
1. 현대어 풀이
• 억겹으로 얽힌 덩굴이 우거진 내 누추한 집은
•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어느덧 가을은 찾아왔구나
2. 한국어 번역
우거진 덩굴로 뒤덮인 이 집
인적마저 끊겼건만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구나
3. 해설
• 에교 법사는 10세기 말~11세기 초 활동한 승려 시인.
• 적막한 거처와 계절의 흐름이 대비돼,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48. 미나모토노 시게유키(源重之)
원문
風をいたみ 岩うつ波の おのれのみ
くだけてものを 思ふころかな
1. 현대어 풀이
• 거친 바람에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는 파도처럼
• 내 마음만 부서져 고뇌하는 이 시절이로다
2. 한국어 번역
모진 바람에 바위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산산이 부숴지는 건 내 마음 뿐
이 얼마나 괴로운 때인가
3. 해설
• 미나모토노 시게유키는 사랑과 인생의 비애를 자주 노래함.
• 부딪쳐 박살나는 파도에 자기 심정을 투영한 시.
49. 오나카토미노 요시노부(大中臣能宣朝臣)
원문
御垣守 衛士のたく火の 夜は燃え
昼は消えつつ ものをこそ思へ
1. 현대어 풀이
• 궁궐 지키는 병사의 화톳불은 밤에는 활활 타오르고
• 낮엔 꺼져가듯, 내 마음도 시시각각 변화하며 근심에 잠긴다
2. 한국어 번역
궁 지키는 병사 화톳불처럼
밤이면 타오르고 낮이면 꺼지듯
나 또한 시시때때로 애를 태우는구나
3. 해설
• 오나카토미노 요시노부는 기노 쓰라유키 등과 함께 《고킨와카슈》 편찬에 참여.
• 화톳불의 ‘밤낮’ 변화로, 애절함과 번민을 묘사.
50. 후지와라노 요시타카(藤原義孝)
원문
君がため 惜しからざりし 命さへ
ながくもがなと 思ひけるかな
1. 현대어 풀이
• 그대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았던 내 목숨마저
• 이제는 오래도록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다니
2. 한국어 번역
그대 위해서 기꺼이 바칠 듯하던 내 목숨
이젠 조금만 더 길게 살아
그대와 더 오래 머물고 싶구나
3. 해설
• 후지와라노 요시타카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귀공자.
• 사랑에 빠져 “언제든 죽어도 좋다”던 마음이, 막상 사랑을 이루자 “더 오래 살고 싶다”로 변한 인간적인 심리.
(…이하 51~100번은 [3부]에 계속…)
[3부] 51~75번
51. 후지와라노 사네카타(藤原実方朝臣)
원문
かくとだに えやはいぶきの さしも草
さしも知らじな もゆる思ひを
1. 현대어 풀이
• “사랑합니다”라는 말조차 못 하는 내 이 마음을
• 그대가 어찌 알랴, 이토록 속타는 내 사랑을
2. 한국어 번역
사랑한다 한마디 못 내뱉고
가슴속만 타들어 가는데
그대는 내 불타는 마음 알 길 없으리
3. 해설
• 사네카타(?-999경)는 궁정 러브 스캔들로도 유명한 미남 시인.
• ‘이부키산(伊吹山)의 약초(さしも草)’가 ‘사시모쿠사’(쑥)와 ‘이토록(さしも)’의 중의적 표현.
52. 후지와라노 미치노부(藤原道信朝臣)
원문
あけぬれば 暮るるものとは 知りながら
なほ恨めしき 朝ぼらけかな
1. 현대어 풀이
• 날이 새면 밤이 온다는 것을 알지만
• 그래도 원망스럽다, 님을 곁에 두지 못한 채 찾아온 이 새벽이
2. 한국어 번역
밤이 밝으면 곧 다시 저물겠지만
그래도 이 새벽은 야속하기만 해
그대와 한 자리에 머물지 못했으니
3. 해설
• 후지와라노 미치노부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시인.
• 희미한 새벽이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을 의미.
53. 후지와라노 미치쓰나의 어머니(右大将道綱母)
원문
なげきつつ ひとり寝る夜の 明くるまは
いかに久しき ものとかは知る
1. 현대어 풀이
• 한탄하며 홀로 지새운 밤이 밝아오기까지
• 얼마나 긴 세월인지 그대는 알기나 하는지
2. 한국어 번역
한숨지으며 홀로 밤을 지새니
아침 해 뜰 때까지 이 시간이
천 년처럼 길게만 느껴지는구나
3. 해설
• 필명 ‘미치쓰나의 어머니’로 알려진 여성 문장가. 『蜻蛉日記』의 저자로도 유명.
• 홀로 쓸쓸히 기다리는 여심을 섬세하게 묘사.
54. 다카시나노 기시(儀同三司母)
원문
忘れじの 行く末までは かたければ
今日をかぎりの 命ともがな
1. 현대어 풀이
• “결코 잊지 않으리”라던 맹세가 영원할 수는 없기에
• 차라리 오늘을 마지막으로 내 목숨이 다하면 좋으련만
2. 한국어 번역
영원할 수 없는 약속이라
오늘이 내 삶의 끝이라면
잊힘의 고통 없이 떠날 수 있으련만
3. 해설
• ‘다카시나노 기시(高階氏)’ 혹은 ‘기시’로 불리며, 미치쓰나의 어머니와 동시대에 활동한 여성 귀족 시인.
• 약속의 허무함과 죽음을 통한 해탈을 염원하는 듯한 표현.
55. 후지와라노 긴토(大納言公任)
원문
瀧の音は 絶えて久しく なりぬれど
名こそ流れて なほ聞こえけれ
1. 현대어 풀이
• 폭포 소리는 오래전에 말라 없어져도
• 그 ‘이름’만은 여전히 세상에 울려 퍼지는구나
2. 한국어 번역
마른 폭포수야 소리 끊긴 지 오래건만
그 명성만은 흐르고 흘러
지금도 세상에 울려 퍼지네
3. 해설
• 후지와라노 긴토(966~1041)는 당대 궁정 예술·음악·시문에 능통했던 대가.
• 실체는 사라져도 이름(명성)은 전해진다는 인생의 무상과 명예심을 노래.
56. 이즈미 시키부(和泉式部)
원문
あらざらむ この世のほかの 思ひ出に
今ひとたびの 逢ふこともがな
1. 현대어 풀이
•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날 내게
• 마지막 추억이 될 또 한 번의 만남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 한국어 번역
더는 오래 못 살 이 세상이라
마지막으로 당신을 만나
한 점 후회 없이 떠나고 싶구나
3. 해설
• 이즈미 시키부(970?~1030?)는 당대 최고의 여류가인, 관능적이고 애절한 사랑시로 유명.
•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 사랑을 원한다’는 열정이 돋보인다.
57.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원문
めぐり逢ひて 見しやそれとも わかぬ間に
雲がくれにし 夜半の月かな
1. 현대어 풀이
• 겨우 다시 만나 “정말 그대였던가?” 라고 묻기도 전에
• 구름 뒤로 숨어버린 한밤의 달이로다
2. 한국어 번역
간신히 다시 만났는데
자네가 맞는지도 확인 못한 채
구름 뒤로 사라지는 밤달이여
3. 해설
• 『겐지모노가타리』의 작가로 유명한 무라사키 시키부(973?~1014?).
• 재회가 무척 짧았던 아쉬움을 ‘밤달’의 순간적 장면에 비유.
58. 다이니노 산미(大弐三位)
원문
ありま山 ゐなの笹原 風吹けば
いでそよ人を 忘れやはする
1. 현대어 풀이
• 아리마 산의 조릿대밭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듣노라면
• 어찌 임을 잊을 수 있으랴, 오히려 추억이 떠오르는데
2. 한국어 번역
아리마산 조릿대 흔드는 바람결에
내 마음은 더욱 소용돌이치네
그대를 잊으라니 어찌 가능하리
3. 해설
• 다이니노 산미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딸이라는 설이 유력.
• 바람 소리에 ‘옛사랑의 기억’이 깨어나는 심정을 노래.
59. 아카조메에몬(赤染衛門)
원문
やすらはで 寝なましものを 小夜ふけて
かたぶくまでの 月を見しかな
1. 현대어 풀이
• 망설이지 않고 그냥 잠들어버릴 것을
• 밤이 깊어 달이 기울 때까지 기다렸건만, 님은 오지 않았구나
2. 한국어 번역
차라리 미련 없이 눈감아 버렸다면
이렇게 달 기울도록
헛된 기다림에 지치지 않았을 것을
3. 해설
• 아카조메에몬은 여성 가인 중 한 명으로, 궁정 생활을 통해 달달한 러브송을 많이 남겼다.
• 애타게 기다렸으나 헛된 밤이 지나버린 아쉬움이 배어 있음.
60. 고시키부노 나이시(小式部内侍)
원문
大江山 いく野の道の 遠ければ
まだふみも見ず 天の橋立
1. 현대어 풀이
• 오에 산과 이쿠노 들판을 건너는 길이 멀기에
• 아직 편지(소식)도 보지 못했을뿐더러,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도 못 가보았네
2. 한국어 번역
저 멀리 오에 산 건너
이쿠노 들판도 아득하건만
편지 소식 하나 못 받았고, 명승지도 못 봤네
3. 해설
• ‘고시키부노 나이시’는 ‘이즈미 시키부’의 딸.
• 여기서 ‘아마노하시다테’는 실제 교토의 명소이자, ‘하늘로 잇는 다리’라 불리는 절경지.
61. 이세노 다이후(伊勢大輔)
원문
いにしへの 奈良の都の 八重桜
けふ九重に にほひぬるかな
1. 현대어 풀이
• 옛날 나라 도성의 겹벚꽃이
• 오늘날 황궁(九重)에서도 곱게 피어 향기를 더하네
2. 한국어 번역
옛 나라 도성의 겹벚꽃
오늘도 궁궐 안에 핀 채
옛 향기를 머금어내는구나
3. 해설
• 이세노 다이후(생몰년 미상)는 궁정 행사에 밝았던 여관(女官).
• ‘천 년 전 꽃’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전통과 계승의 상징.
62. 세이 쇼나곤(清少納言)
원문
夜をこめて 鳥の空音は はかるとも
よに逢坂の 関は許さじ
1. 현대어 풀이
• 한밤중이라 닭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해도
• 아오사카 관문은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2. 한국어 번역
깊은 밤 닭울음 흉내 낸들
오사카 관문은 쉽게 열리지 않으리
속임수로는 결코 넘을 수 없네
3. 해설
• 『마쿠라노소시(枕草子)』로 유명한 세이 쇼나곤(966?~1025?).
• ‘야반도주·속임수’로 관문을 통과하려 해도 헛수고라는 재치 있는 표현.
63. 후지와라노 미치마사(左京大夫道雅)
원문
いまはただ 思ひ絶えなむ とばかりを
人づてならで いふよしもがな
1. 현대어 풀이
• “이제는 정말 마음을 끊어야겠다”라는 이 한 마디
• 누구도 아닌 그대에게 직접 말하고 싶구나
2. 한국어 번역
더는 미련 없이 잊으려 한다
이 한마디만은 전하고 싶지만
제삼자를 거치지 않고 내 입으로 말하고 싶구나
3. 해설
• 후지와라노 미치마사는 화려한 연애담으로 회자된 귀족.
• 사랑을 끊으려 해도, 마지막 인사는 직접 하고 싶은 인지상정.
64. 후지와라노 사다요리(権中納言定頼)
원문
朝ぼらけ 宇治の川ぎり たえだえに
あらはれわたる 瀬々のあじろぎ
1. 현대어 풀이
• 새벽녘 우지강에 낀 안개가 옅어지니
• 강바닥 ‘아지로(魚籠)’가 드문드문 드러나는구나
2. 한국어 번역
새벽녘 우지강 가득 찬 안개가 걷히자
드문드문 보이는 어살(漁具) 말뚝
물안개 사이로 고요히 드러나네
3. 해설
• 사다요리는 후지와라노 다다히라의 손자로, 가인 명문가 출신.
• 우지강 어귀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와 고깃그물의 모습이 서정적이다.
65. 사가미(相模)
원문
恨みわび ほさぬ袖だに あるものを
恋に朽なむ 名こそ惜しけれ
1. 현대어 풀이
• 원망과 슬픔에 눈물마를 새 없는 내 소매가 있건만
• 더 안타까운 건, 이 사랑이 내 명예까지 떨어뜨릴까 하는 두려움이라
2. 한국어 번역
원망에 찬 눈물로 축축한 내 소매
그것도 서러운데
남의 입방아로 명예까지 잃을까 두렵구나
3. 해설
• 사가미는 헤이안 후기의 여류시인, 궁정에서 ‘연애 스캔들’에 휘말렸던 인물.
• 사랑 때문에 평판까지 무너지는 상황을 탄식.
66. 승정 교손(前大僧正行尊)
원문
もろともに あはれと思へ 山桜
花よりほかに 知る人もなし
1. 현대어 풀이
• 나와 함께 슬픔도 기쁨도 이해해 주렴, 산벚나무여
• 너 말고 내 마음 알아줄 이 아무도 없구나
2. 한국어 번역
산 벚꽃이여, 나와 함께
이 외로운 마음 알아주렴
세상 그 누구도 널만큼 내 속을 모르니
3. 해설
• 교손(1055~1129)은 황족 출신 승려.
• 자연 속의 벚꽃을 ‘비밀스런 대화 상대’로 삼아, 속세의 고독감을 드러낸다.
67. 스오노 나이시(周防内侍)
원문
春の夜の 夢ばかりなる 手枕に
かひなく立たむ 名こそ惜しけれ
1. 현대어 풀이
• 봄밤의 꿈 같은 짧은 ‘팔베개’였거늘
• 괴이한 소문 퍼져 내 이름만 더럽혀질까 두렵구나
2. 한국어 번역
봄밤 꿈처럼 잠깐의 정이었는데
헛된 소문으로 내 명예만
더럽혀질까 두렵도다
3. 해설
• 스오노 나이시는 황족·귀족과 교류했던 여관.
• ‘봄밤의 한 순간’으로 은유한 짧은 밀애와 뒤이은 소문 피해에 대한 탄식.
68. 산조 천황(三条院)
원문
心にも あらでうき世に ながらへば
恋しかるべき 夜半の月かな
1. 현대어 풀이
• 내 진심과 무관하게 덧없는 세상에 오래 머물다 보면
• 결국 그리워질 테지, 이 한밤의 달이여
2. 한국어 번역
속마음과 다르게 억지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이 밤달이 그리워질 거라
그래서 더욱 안타깝구나
3. 해설
• 산조 천황(976~1017)은 시력이 약하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 인생 무상의 정서와, 병고 속에서 달을 바라보는 처연함이 느껴진다.
69. 노인 법사(能因法師)
원문
嵐吹く 三室の山の もみぢ葉は
龍田の川の 錦なりけり
1. 현대어 풀이
• 거친 바람 불어오는 미무로 산의 단풍잎은
• 다쓰타강 위에 곱게 펼쳐진 비단이었구나
2. 한국어 번역
미무로 산 몰아친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잎들
다쓰타강 수면 위 붉은 비단을 펼쳤네
3. 해설
• 노인 법사는 여러 지방을 돌며 풍광을 노래한 승려 시인.
• 가을바람 + 붉은 단풍 + 수면에 비친 화려함 = 일본 전통 가을 미학의 정수.
70. 료젠 법사(良選法師)
원문
さびしさに 宿を立ち出でて ながむれば
いづこもおなじ 秋の夕暮れ
1. 현대어 풀이
•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암자를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 어디를 가도 똑같은 가을 저녁 풍경이 펼쳐져 있네
2. 한국어 번역
외로워라, 암자 나서 주위를 보니
그 어디도 한결같이 스산한
가을 저녁노을이 깔려 있을 뿐
3. 해설
• 료젠 법사 역시 떠돌이 승려.
• 가을 저녁은 어디나 똑같이 쓸쓸하다는 ‘보편적 고독’의 이미지.
71. 미나모토노 쓰네노부(大納言経信)
원문
夕されば 門田の稲葉 おとづれて
あしのまろやに 秋風ぞ吹く
1. 현대어 풀이
• 저녁이 되면 집 앞 논의 벼 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 갈대오두막에 가을바람이 불어오네
2. 한국어 번역
해 질 무렵, 문 앞 논의 벼잎 부딪히는 소리
갈대 엮은 오두막에
가을바람이 고요히 스며드네
3. 해설
• 미나모토노 쓰네노부(1016~1097)는 실무 관료이자 우수한 가인.
• 들판과 갈대오두막, 바람 소리로 가을의 정취를 묘사.
72. 유시 내친왕가의 기이(祐子内親王家紀伊)
원문
音に聞く たかしの浜の あだ波は
かけじや袖の ぬれもこそすれ
1. 현대어 풀이
• 소문이 자자한 다카시 해변의 변덕스런 물결이여
• 괜히 다가갔다 소매만 적시면 어쩌나
2. 한국어 번역
소문으로 듣던 다카시 바닷가 파도
함부로 나서면
내 옷자락만 젖고 말리라
3. 해설
• 황족 ‘유시 내친왕’의 시녀(家紀伊)로, 여관 시인의 하나.
• 사랑의 위험 혹은 세속의 험난함을 ‘변덕스런 파도’로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
73. 오에노 마사후사(前権中納言匡房)
원문
高砂の 尾の上の桜 咲きにけり
外山の霞 たたずもあらなむ
1. 현대어 풀이
• 높은 절벽 위 벚꽃이 이제 막 피었구나
• 바깥 산에 끼는 안개여, 제발 일지 말고 그대로 머무르렴
2. 한국어 번역
높다란 절벽 위에 핀 벚꽃
바깥산 안개여, 거치지 말아다오
그 고운 꽃봉오리 오래 감상하고 싶으니
3. 해설
• 오에노 마사후사(1041~1111)는 학자이자 문인.
• ‘벚꽃’과 ‘안개’의 조합은 봄 경치의 전형적 심상이다.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 안개가 ‘떠나지 말라’는 역설적 표현.
74. 미나모토노 도시요리(源俊頼朝臣)
원문
うかりける 人をはつせの 山おろしよ
はげしかれとは 祈らぬものを
1. 현대어 풀이
• 차가웠던 그대여, 하츠세의 거친 산바람이여
• 그렇게 몰아치라고 빌진 않았건만
2. 한국어 번역
내 마음 몰라준 차가운 님이여
하츠세 산바람같이 거세군요
이토록 세찬 바람이 되라 빌진 않았는데
3. 해설
• 미나모토노 도시요리는 『金葉和歌集』 편찬에도 기여한 유명 시인.
• 상대방의 매정함을 ‘하츠세 고개의 모진 바람’에 빗댄 작품.
75. 후지와라노 모토토시(藤原基俊)
원문
契りおきし させもが露を 命にて
あはれ今年の 秋もいぬめり
1. 현대어 풀이
• 서로 맺은 ‘사세요(쑥) 이슬 같은’ 그 약속을 목숨같이 여겼건만
• 결국 올해 가을도 덧없이 지나버리는구나
2. 한국어 번역
쑥 이슬처럼 덧없는 약속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건만
올가을도 결국 스러져버렸네
3. 해설
• ‘させも草(쑥)’와 ‘露(이슬)’를 결합해 ‘허무한 약속’을 나타내는 가케코토바.
• 가을이 가버리듯, 사랑의 기약도 물거품이 되었음을 한탄.
(…76~100번은 아래 [4부]에 계속…)
[4부] 76~100번
76. 후지와라노 다다미치(藤原忠通)
원문
わたの原 こぎいでてみれば ひさかたの
雲居にまがふ 沖つ白波
1. 현대어 풀이
• 광활한 바다를 배 저어 나아가 보니
• 하늘 구름 같아 보이는 먼 바다의 흰 파도가 일렁이는구나
2. 한국어 번역
드넓은 바다 향해 배를 내달으니
구름인 듯 아득한 바다 물결
하얗게 펼쳐지는구나
3. 해설
• 다다미치(1097~1164)는 후지와라 섭관가의 권력자이자 시인.
• 막연하게 보이는 저 파도를 구름과 혼동하는 멀리서 본 장관.
77. 스토쿠 천황(崇徳院)
원문
瀬をはやみ 岩にせかるる 滝川の
われても末に あはむとぞ思ふ
1. 현대어 풀이
• 물이 빠른 여울이 바위에 가로막혀 둘로 갈라져도
• 결국은 합류하듯, 우리도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
2. 한국어 번역
거센 여울물 바위에 부딪쳐 갈라져도
훗날 흐름 따라 다시 만나는 물길처럼
우리도 끝내 함께할 것을 믿노라
3. 해설
• 스토쿠 천황(1119~1164)은 정변에 휘말려 비운의 최후를 맞았다.
• ‘갈라져도 결국 하나가 된다’는 러브송이지만, 작자 운명과 겹쳐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78. 미나모토노 가네마사(源兼昌)
원문
淡路島 かよふ千鳥の 鳴く声に
いく夜ねざめぬ 須磨の関守
1. 현대어 풀이
• 아와지섬 오가는 천둥새(물새)가 우는 소리에
• 스마 관문지기는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던가
2. 한국어 번역
아와지섬 오가며 우짖는 물새 소리
스마 관문지기는
얼마나 많은 밤을 설치며 보냈을꼬
3. 해설
• 미나모토노 가네마사는 생몰 미상.
• 새벽 새소리에 잠 깬 외로운 문지기의 모습을 통해, 변방의 쓸쓸함을 노래.
79. 후지와라노 아키스케(左京大夫顕輔)
원문
秋風に たなびく雲の たえ間より
もれ出づる月の 影のさやけさ
1. 현대어 풀이
•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 새어 나오는 달빛이 너무나 맑고 투명하구나
2. 한국어 번역
가을바람에 밀려가는 구름 틈새로
한 가닥 비치는 달빛
맑고도 차가운 그 빛이로다
3. 해설
• 후지와라노 아키스케는 『新勅撰和歌集』 편찬에 참여했던 가인.
• 구름 사이 달빛을 ‘투명한 광채’로 묘사해 가을밤의 청량함을 표현.
80. 다이켄몬인노 호리카와(待賢門院堀河)
원문
長からむ 心もしらず 黒髪の
乱れて今朝は ものをこそ思へ
1. 현대어 풀이
• ‘영원히 함께하자’던 그대의 마음이 진정한지 모르겠지만
• 이 아침,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처럼 심란하기만 하구나
2. 한국어 번역
늘 함께하자던 그 언약
진정일지 어찌 알겠는가
헝클어진 머릿결처럼 복잡한 이 아침이여
3. 해설
• 궁정 여성 시인으로, ‘다이켄몬인’(고시라카와 법황의 황후) 가문을 모시던 인물.
• 방금까지 동침했으나, 마음은 불안정한 사랑의 미묘함을 머리카락에 빗댔다.
81. 도쿠다이지 사네사다(後徳大寺左大臣)
원문
ほととぎす 鳴きつる方を ながむれば
ただありあけの 月ぞのこれる
1. 현대어 풀이
• 두견새가 울던 방향을 바라보니
• 새벽달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구나
2. 한국어 번역
두견새 울던 하늘가 바라보았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차가운 새벽달만 남았네
3. 해설
• 도쿠다이지 사네사다(1139~1192)는 섭정가 후지와라 일족과 혼인 관계.
• 한밤의 새 소리에 시선을 돌렸을 때, 달만 덩그러니 있는 쓸쓸함.
82. 후지와라노 아쓰요리(道因法師)
원문
思ひわび さても命は あるものを
憂きにたへぬは 涙なりけり
1. 현대어 풀이
• 괴로워하며 살아가긴 하지만, 목숨은 붙어 있건만
• 차마 못 견디고 흘러버리는 건 바로 눈물이로다
2. 한국어 번역
애달픈 마음 근근이 살아는 있으되
도무지 참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건
결국 뜨거운 눈물이더라
3. 해설
• ‘道因法師(どういんほうし)’는 후지와라노 아쓰요리로도 불림. 승려로 출가.
• 죽지 못해 사는 처지라도, 결국 울 수밖에 없다는 인생의 비애.
83. 후지와라노 도시나리(皇太后宮大夫俊成)
원문
世の中よ 道こそなけれ 思ひ入る
山の奥にも 鹿ぞ鳴くなる
1. 현대어 풀이
• 세상에 이렇다 할 길이 없구나
• 깊은 산속에 숨어들어도 사슴 울음이 쓸쓸함을 더하는구나
2. 한국어 번역
살 길 없어 숨은 깊은 산골
그곳조차 사슴 우는 소리에
외로움이 더해질 뿐이네
3. 해설
• 후지와라노 도시나리(1114~1204)는 ‘슈카센(秀歌撰)’ 명인. 사이교법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 세상의 괴로움도, 자연의 울음도 피해갈 수 없음을 토로.
84. 후지와라노 기요스케(藤原清輔朝臣)
원문
長らへば またこのごろや しのばれむ
憂しと見し世ぞ いまは恋しき
1. 현대어 풀이
• 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 지금 이 괴로운 때마저 그리워지려나
• 고통스럽던 시절이 훗날엔 애틋이 떠오르겠구나
2. 한국어 번역
더 살아가다 보면
이 쓰린 시절까지 그리워질까
힘겨웠던 그 시간이 새삼 애틋하게 떠오르듯
3. 해설
• 기요스케(1104~1177)는 가풍이 뛰어난 후지와라 시인 가문 출신.
• 시간이 흐르면 괴로운 순간도 추억이 되어버릴 것이란 달관의 눈길.
85. 슌에 법사(俊恵法師)
원문
夜もすがら もの思ふころは 明けやらで
閨のひまさへ つれなかりけり
1. 현대어 풀이
• 밤새 뒤척이며 생각에 잠겨 있으니
• 새벽이 와도 어둑하고, 방문 틈새까지도 무정하구나
2. 한국어 번역
밤새 그리움에 눈 못 붙이면
아침이 와도 여전히 캄캄하고
방문 틈새조차 싸늘하기만 하네
3. 해설
• 슌에(1113?~1191?)는 사이교와 함께 활동한 승려 가인.
• 밤새 잠 못 드는 사랑·근심이 시간 감각까지 잃게 만드는 표현.
86. 사이교 법사(西行法師)
원문
嘆けとて 月やはものを 思はする
かこち顔なる わが涙かな
1. 현대어 풀이
• 달이 슬퍼하라고 일부러 저를 보게 하는 건 아니건만
• 나는 달을 탓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구나
2. 한국어 번역
달이야 내게 울라며 모습을 드러내랴
그저 내 속이 괴로워
달 탓하며 흘리는 눈물이 가엾을 뿐
3. 해설
• 사이교(1118~1190)는 무사 출신으로 출가해 방랑시를 남긴 인물.
• 자연(달)은 무심한데, 스스로 달을 보며 한탄하는 인간 심정이 잘 드러난다.
87. 자쿠렌 법사(寂蓮法師)
원문
村雨の 露もまだひぬ まきの葉に
霧立ちのぼる 秋の夕暮れ
1. 현대어 풀이
• 소나기 내린 뒤의 이슬마저 채 마르지 않은 삼나무 잎 위로
• 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을 저녁이구나
2. 한국어 번역
스쳐간 소나기의 이슬도 마르지 않은
상록수 잎새 위로 피어오르는 안개
어둑한 가을 저녁 풍경이여
3. 해설
• 자쿠렌(1139?~1202?)은 사이교의 영향을 받은 승려 시인.
• 가을 소나기 이후의 풍경을 극도로 시각화·청각화한 명작.
88. 고카몬인노 벳토(皇嘉門院別当)
원문
難波江の 蘆のかりねの 一夜ゆゑ
身を尽くしてや 恋わたるべき
1. 현대어 풀이
• 나니와 강가의 갈대처럼 짧은 하룻밤 만남이라도
• 온 몸 다 바쳐 이 사랑을 지키고 싶구나
2. 한국어 번역
나니와 강변 갈대 마디처럼
짧고도 아쉬운 하룻밤이었어도
나는 모든 걸 걸어 이 사랑 지키리라
3. 해설
• ‘고카몬인’(1122~1182)의 시녀(別当)로, 여러 가인과 교류.
• 짧은 밀회의 밤을 갈대 마디에 비유하여,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노래.
89. 쇼쿠시 내친왕(式子内親王)
원문
玉の緒よ 絶えなば絶えね ながらへば
忍ぶることの よわりもぞする
1. 현대어 풀이
• 보석 실 같은 내 목숨이 끊어진다면 차라리 끊어져라
• 이대로 오래 살면 숨기는 고통만 더 깊어질 테니
2. 한국어 번역
애끊는 이 목숨이여
차라리 지금 끊어지거라
오래 살아봐야 숨겨 둔 이 아픔 더해질 뿐이니
3. 해설
• 쇼쿠시 내친왕(1150~1201)은 고시라카와 천황의 공주. 뛰어난 여성 가인.
• 살아갈수록 더 깊어지는 고뇌에서 차라리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극단적 심경.
90. 인부몬인노 다이후(殷富門院大輔)
원문
見せばやな 雄島のあまの 袖だにも
濡れにぞ濡れし 色は変はらず
1. 현대어 풀이
• 보여주고 싶구나, 오시마 어부의 소매도 물에 절어 빛이 바랬건만
• 내 옷소매는 이미 눈물로 흠뻑 젖어도 빛깔은 그대로니
2. 한국어 번역
바닷물에 젖어 빛 바래는 어부의 소매도 있건만
내 소매는 눈물에 젖고 또 젖어
더는 변할 곳 없이 이대로일 뿐
3. 해설
• 인부몬인은 고토바 천황의 중궁(中宮) 소속 여성.
• 눈물에 찌든 소매가 더 이상 바랄 데도 없이 슬픔에 물들었다는 과장된 표현.
91. 구조 요시츠네(後京極摂政前太政大臣)
원문
きりぎりす なくや霜夜の さむしろに
衣かたしき ひとりかも寝む
1. 현대어 풀이
• 귀뚜라미가 우짖는 서릿발 내린 밤의 거친 자리 위에
• 옷을 반쯤 깔고 나 홀로 잠들어야 하는가
2. 한국어 번역
귀뚜라미 울음 메아리치는 서늘한 밤
서리 내린 거친 멍석 위에
옷자락 깔고 홀로 몸을 뉘우니 서글프다
3. 해설
• ‘구조 요시츠네’는 가마쿠라 초기 섭정·태정대신을 지낸 인물.
• 궁정의 화려함 뒤에 느껴지는 숙소의 한적함, 외로움이 대비된다.
92. 니조인노 사누키(二条院讃岐)
원문
わが袖は 潮干に見えぬ 沖の石の
人こそしらね かわくまもなし
1. 현대어 풀이
• 내 소매는 간조(潮干) 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먼 바닷속 바위와 같아
• 남들은 모르겠지만 마를 새가 없구나(늘 눈물에 젖어)
2. 한국어 번역
간조에도 물속에 잠긴 채 보이지 않는 저 바위처럼
내 눈물에 젖은 소매는
말라본 적이 없다는 걸 그대는 알지 못하리
3. 해설
• 니조인(후지와라) 궁의 여관 ‘사누키’.
• 늘 눈물에 젖어 마를 새가 없다는 전통적 애상 표현.
93. 미나모토노 사네토모(鎌倉右大臣)
원문
世の中は つねにもがもな 渚こぐ
あまの小舟の 綱手かなしも
1. 현대어 풀이
• 세상이 늘 변함없이 평화롭다면 좋으련만
• 해변 오가는 어부의 작은 배가 닻줄을 잡아끄는 모습이 애잔하구나
2. 한국어 번역
영원히 변치 않는 세상이라면
해안가 건너는 저 작은 고깃배
닻줄 당기는 어부 손길이 더욱 평화로울 텐데
3. 해설
• 미나모토노 사네토모(1192~1219)는 가마쿠라 막부 3대 쇼군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 “항구로 드나드는 배” 같은 평온함을 바라는 시적 염원이, 그의 실존 운명과 맞물려 처연하다.
94. 아스카이 마사츠네(参議雅経)
원문
みよし野の 山の秋風 小夜ふけて
ふるさと寒く 衣うつなり
1. 현대어 풀이
• 요시노 산에 부는 가을바람은 깊은 밤을 재촉하고
• 옛 고향은 한기만 가득, 다듬잇방망이 소리(옷 매무새)도 쓸쓸하구나
2. 한국어 번역
요시노 골짜기 스며드는 가을바람
밤 깊어지니 고향도 싸늘해져
다듬잇소리조차 애달프게 퍼지누나
3. 해설
• 아스카이 마사츠네(1170~1221)는 가마쿠라 초기의 공경.
• 밤중에 들리는 ‘옷 두드리는 소리(衣うち)’가 고향의 쓸쓸함을 더한다.
95. 승정 지엔(前大僧正慈円)
원문
おほけなく うき世のたみに おほふかな
わがたつ杣に 墨染の袖
1. 현대어 풀이
• 감히 내가 어찌 이 괴로운 세상 사람들을 덮어 주리라 말할 수 있으랴
• 그저 승복(墨染め) 소매 안에 숨은 채 부처의 길을 갈 뿐
2. 한국어 번역
함부로 말 못 하겠으나
이 썩은 세상 중생들 보듬으려
먹물 옷자락에 그들을 품으려 하는구나
3. 해설
• 지엔(1155~1225)은 천태종 고승이자, 역사서 『愚管抄』 저자.
• 승려로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뜻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를 보임.
96. 사이온지 긴츠네(入道前太政大臣)
원문
花さそふ 嵐の庭の 雪ならで
ふりゆくものは わが身なりけり
1. 현대어 풀이
• 꽃을 재촉하는 폭풍이 몰아치는 뜰에 내려 쌓이는 것은 눈이 아니라
• 결국 시들어가는 내 몸(인생)이었구나
2. 한국어 번역
격렬한 바람에 날리는 건 눈꽃이 아니고
무너져 내리는 내 몸(인생)이라
꽃눈 같은 허무함 속에 스러지는구나
3. 해설
• 사이온지 긴츠네(1171~1244)는 고토바 천황 측근으로 유명.
• 봄바람에 꽃이 흩날리는 광경을 ‘자기 인생이 소진되어 가는 모습’으로 중첩시켰다.
97. 후지와라노 사다이에(藤原定家)
원문
こぬ人を まつほの浦の 夕なぎに
やくや藻塩の 身もこがれつつ
1. 현대어 풀이
• 오지 않는 그대를 기다리는 마쓰호 해안의 잔잔한 저녁 바다에서
• 김(海藻)을 굽듯이 내 몸도 속타 들어가는구나
2. 한국어 번역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마쓰호 해안
저녁 바다 고요 속에
굽히는 해초처럼 내 몸도 타들어간다
3. 해설
• 바로 ‘백인일수’를 편찬한 장본인, 후지와라노 사다이에(=후지와라노 테이카).
• ‘藻塩(もしお)’ 굽는 장면은 바닷가에서 소금을 얻기 위해 해초를 태우는 모습으로, 타들어 가는 사랑을 상징.
98. 후지와라노 이에타카(従二位家隆)
원문
風そよぐ ならの小川の 夕暮れは
みそぎぞ夏の しるしなりける
1. 현대어 풀이
• 바람이 살랑이는 나라(奈良)의 작은 개울가 저녁 풍경을 보니
• 여름의 흔적은 ‘몸을 정결히 하는 의식(みそぎ)’에서 찾아볼 수 있구나
2. 한국어 번역
살랑이는 바람 부는 나라의 작은 시냇가
해질녘 언뜻 보면 가을 같아도
물가의 정화(禊) 의식이 여름을 알게 하네
3. 해설
• 이에타카(1158~1237)는 사다이에와 함께 《신고금와카슈》 편찬에 참여.
• 가을처럼 시원한 초저녁 풍경이지만, 실제로는 여름철 정화 의식이 벌어지고 있다는 반전.
99. 고토바 천황(後鳥羽院)
원문
人もをし 人も恨めし あぢきなく
世を思ふゆゑに もの思ふ身は
1. 현대어 풀이
• 사람이 그립고, 또 그 사람이 밉기도 하니
• 덧없는 세상 생각으로 근심만 깊어가는 내 삶이로다
2. 한국어 번역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원망스러운 이 마음
덧없는 세상 탓에
시름만 더해가는 내 인생이여
3. 해설
• 고토바 천황(1180~1239)은 사다이에 등과 친교가 깊었으나 정치 투쟁에서 패해 유배.
•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복잡한 인간관계와 인생의 무상함을 토로.
100. 준토쿠 천황(順徳院)
원문
ももしきや 古き軒端の しのぶにも
なほあまりある 昔なりけり
1. 현대어 풀이
• 장엄한 궁궐(百敷)도 이젠 낡은 처마 끝에 고사리풀만 자랄 뿐이나
• 그 옛 영광은 여전히 남아, 한없이 그리울 뿐이구나
2. 한국어 번역
백모(百敷)로 상징되던 궁전도
낡은 처마 끝에 고사리만 우거졌지만
여전히 아련히 남은 옛 번영이여
3. 해설
• 준토쿠 천황(1197~1242)은 고토바 천황의 아들, 역시 유배된 비운의 황족.
• 화려했던 과거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그 흔적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회한과 추억으로 ‘백인일수’의 대미를 장식한다.
부록: 백인일수와 그 의의
1. 형식·편찬
•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선정한 100수의 와카 모음.
• 7~13세기에 걸친 다양한 시인의 대표작을 시대순으로 엮어, 일본 고전시가의 정수를 보여 준다.
2. 주요 주제
• 자연·계절 (봄, 가을, 겨울, 새벽, 달, 바람, 단풍, 눈, 등등)
• 사랑·이별 (상사병, 재회, 이별의 슬픔, 기다림, 배신, 미련 등)
• 인생무상과 불교적 관조 (승려 작가의 시, 세속 풍진을 떠나려는 태도)
3. 카루타와 전통
• 에도 시대 이후 ‘백인일수’는 카드 놀이(かるた)로 대중화.
• 정월(お正月) 놀이, 학교 경연대회 등에서 널리 행해져, 현대에도 이어진다.
• 일본인에게 가장 대표적 ‘옛 시 문학 입문서’로 꼽힘.
4. 문화적 영향
• 유구한 역사를 통해 700여 종 이상의 주석서와 연구서가 쏟아짐.
• 치하야후루, 명탐정 코난: 진홍의 연가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다뤄짐.
• 학교 교육·문학 교양·서예 연습 등에서 필수 요소가 되었다.
以上이 오구라 백인일수(小倉百人一首) 100수 전곡의 원문, 현대어 풀이, 한국어 번역, 그리고 핵심적인 배경·감상입니다.
각 작품마다 다양한 주석과 해석이 존재하므로,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여러 문헌과 비교해 보길 권장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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